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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e Tae-Ho, Former Professor of Art History, Chonnam National University; Current Professor, Myongji University, "A Pure Devotion to Drawing Home"

    Celebrating Yang Soon-Yeal’s First Solo Exhibition When I stepped into Yang Soon-Yeal’s quiet studio in Andong, what immediately caught my attention were her landscapes. Cornfields, woods, meadows, and low hills — subjects that may seem ordinary, even resistant to being painted — filled her canvases. Yet she has pursued them with quiet persistence, layering delicate blue-green washes. As Yang herself explains, this devotion stems from a deep longing for the scenery of her childhood.   “Nature holds a very special meaning for me. To live, for me, is to live in harmony with nature. Whether life feels ‘successful’ or not depends on whether one can live without greed, simply as part of it. Perhaps this is an illusion, but it comes from the memories of my childhood — gathering mugwort roots along the ridges, playing with flowers — memories that shine as complete beauty. That perfect beauty now draws me not just as memory, but as an ideal place I long to reach. So even today, I breathe in nature’s scent and try to capture its breath and feeling on my canvas.”   Her paintings embody this sentiment: the pure charm of violets by the roadside, the drooping branches of forsythia, the mysterious bloom of wild irises hidden among lush leaves. She has patiently refined these impressions into her own artistic voice.   Although she studied in Daegu from a young age and lived much of her life in the city, Yang’s work still carries the sincerity of her rural roots in Uiseong, near Andong. That honesty shows most clearly in her depictions of pumpkins, blossoms, corn, and wildflowers. If her landscapes reveal persistence, her floral works reveal freshness and grace: violets, azaleas, wild roses, bindweed, morning glories, wild irises, pasqueflowers, and even her daughter asleep in a flowered meadow. Painted in gentle washes without excess, these works radiate a tender, unassuming beauty.   Other pieces feel more spontaneous and lively — camellias glimpsed during a trip to Seonun Temple, or pumpkin blossoms drawn with light, flowing brushwork. Her abstracted depictions of spring wildflowers capture both color and atmosphere with playful charm. Yet above all, Yang’s sense of home is most alive in her paintings of pumpkins and cornfields. The bold yellow of pumpkin blossoms, the ink-toned sweep of leaves, the rhythmic lines of corn rows, even the small delight of a grasshopper among the stalks — here, her hand moves most freely. These works not only reveal her skill but also signal the promise of her future growth as an artist.   Yang graduated from art school in Daegu, married, and settled in Andong. Only later did she return to painting through graduate study, balancing her roles as artist, wife, and mother. This balance has sometimes held back the polish of a full-time painter, but one senses a passion always ready to surge forward, tempered by the wisdom of daily life. This combination — earnestness, restraint, sincerity — gives her art a quiet power, even in its early stages.   Looking back on just a few short years of work, it is clear that Yang will continue to express both her nostalgia for her hometown and the realities of her present life. Just as her pumpkins and cornfields carry her deepest sense of place, so too will the subjects dearest to her heart and hand.   Her landscapes, meanwhile, may evolve in new directions. In her master’s thesis (The Influence of Gyeomjae’s True-View Landscapes on Contemporary Art, 1995), she traced the tradition of Korean landscape painting from Gyeomjae to modern masters such as Cheongjeon and Sojeong. The mountains and valleys around Andong, so well-suited to this tradition, will surely provide fertile ground for her future work.   If she continues in this way, Yang will create a calm yet distinctive artistic voice — one that reflects not only her steadfast character but also the pure devotion carried within her name, Soon-Yeal.

  • 이태호, 전.전남대교수,미술사 현.명지대교수, "고향을 그리는 순정스런 열정"

    양순열의 첫 개인전을 축하하며 안동 시내의 양순열이 조용히 작업하는 공간에 들어섰을 때, 그가 애써 그려온 산수풍경화 작품들이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평이한 야산을 배경으로 펼쳐 놓은 옥수수밭과 숲, 들녘의 풍경들은 언뜻 그림으로 소화하기 힘든 소재인데도 불구하고, 엷은 청록색 담채로 그린 풀빛의 풍경화를 무던하다 싶을 정도로 고집스럽게 시도해온 것 같다. 양순열의 말대로 어려서 눈에 익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게다.   “내게 자연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산다는 것을 자연에 어울려 지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이 성공적인 것인지 아닌지 조차도 자연의 일부로서 욕심 없이 살아가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있다고 느낀다. 어쩌면 완벽한 착각일지도 모르는 나의 이 생각은 두렁을 따라 쑥뿌리를 캐고 꽃놀이를 하던 내 유년의 기억이 완전한 아름다움으로 추억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완전한 아름다움의 세계 그것은 이제 지난날의 기억으로서가 아니라 가보고 싶은 이상향으로서 나를 유인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자연의 체취를 느끼며 그 숨결과 느낌을 나의 화폭에 소중히 기록하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산수화 내지 그림들은 대부분 “길섶에 핀 제비꽃의 청초함이나 흐드러지게 피어 줄기가 휘어 보이는 개나리의 모습이나 따뜻한 햇살을 받아 싱싱하게 솟아나는 풀색이 짙은 잎 사이에 신비하게 피어나는 솔붓꽃에서 받는 느낌을 전달……” -(형상의 파장)전 팜플렛에서, 서울 후인갤러리, 1993- 해보려고 노력해온 결과물이다.   양순열은 고향이 안동에서 멀지 않은 의성 다인이라 한다. 중학교 때부터 대구로 유학하여 오랫동안 도회생활로 가꾸어졌음에도 순정스런 시골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다. 버거운 소재이면서도 그렇게 풍경화들을 꾸준히 선보여 왔던 모양이다. 풍경화와 함께 그려온 호박이나 호박꽃, 옥수수, 들풀이나 꽃 그림에도 양순열의 순정스런 심성이 잘 드러나 있다. 풍경화보다 오히려 꽃 그림들의 경우에서 양순열의 기량이 돋보인다. 제비꽃, 진달래, 찔레꽃, 여뀌풀꽃, 분꽃, 솔붓꽃, 할미꽃이 핀 풀밭에 잠든 딸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은 차분한 담채로 조심스러우면서도 욕심 없이 그려낸 까닭이다. 풋풋하면서도 다감한 매력을 풍기며, 소담하고, 예쁜 그림들이다. 그런 반면에 선운사의 여정 중에 포착한 동백꽃이나 호박꽃 같은 그림은 가벼우면서 활달한 필선의 맛이 유연하고, 때론 봄 들녘의 들꽃과 그 화사한 분위기를 소담하게 추상화 시킨 작품들도 눈에 띈다. 이들과 더불어서 양순열의 그리운 고향은 호박과 호박꽃, 그리고 옥수수 밭을 담은 가실 그림에서 가장 잘 살아나 있다. 노란 호박꽃과 호박 잎의 대담한 설정과 수묵처리, 옥수수밭을 수묵선묘만으로 넘치게 구성한 화면운영, 옥수수밭 사이로 기어가는 방아깨비나 고랑에 함께 핀 풀꽃의 재치 있는 배치 등은 그의 다른 어떤 소재의 그림보다 자신의 솜씨를 마음껏 펼쳐 놓았다. 그리고 양순열 회화의 발전 가능성도 이런 호박이나 옥수수와 관련된 그림을 통해서 새삼 확인해 볼 수 있고, 이번 첫 개인전의 성과를 가늠케 하는 작품들을 내놓은 것이다.   양순열은 대구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결혼한 뒤 안동에 터를 잡고서야, 대학원을 진학하였고, 뒤늦게 다시 붓을 들었다. 그는 또 가정을 꾸려가는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해가며 그림을 그려야 하는 또 다른 짐을 지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전반적으로 양순열의 그림들을 그도 수긍하듯이 전업작가로서의 세련된 면모보다 설익은 아마추어적인 것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가슴 깊이 응어리진 그림에 대한 열정이 언제든 솟구칠 준비가 되어있는 듯하고, 또한 그것을 억제하면서 생활을 이끌어가는 지혜도 갖추고 있다. 이같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가꾸어내는 양순열의 열정과 노력이 어설픈 가운데서도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그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의 촌아낙 같은 첫인상처럼. 기왕 시작한 만큼 지금까지 5~6년의 짧은 기간 쌓아온 그림들을 뒤돌아보면, 그리고 앞으로 계속 다져간다고 치면, 우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추억을 담는 일은 물론이려니와 지금 양순열의 현실 삶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작업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고향생각이 깊었던 만큼 옥수수 밭이나 호박 그림이 돋보이듯이 자신의 손길에 익은 혹은 자신이 가장 소중스럽게 여기는 것들도 놓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수풍경화의 경우는 커다란 방향전환을 요하는 영역이다. 그가 석사논문으로『겸재의 실경 산수화가 현대에 미친 영향』(1995.2)을 썼듯이 우리 미술사에서 풍경화의 고전인 겸재에서 청전과 소정에 이르는 산수화법을 공부하는데 새로이 시작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안동일대의 산세와 계곡풍경들은 고전적인 화풍에 근사하기에 더욱 그렇다. 이러한 점들을 보완하면서 자신의 화업을 쌓아간다면, 잔잔한 가운데 양순열 나름의 예술사를 창조해 낼 것으로 믿는다. 그의 조신하면서도 고집스러워 보이는 용모나, 순박하면서도 치열하게 살아라는 이름처럼.

  • 잔 힌만, 평론가, 작가 및 찰스 힌만 스튜디오 디렉터 찰스 힌만과 공저, "양순열의 작품세계,"

    양순열의 뛰어난 작품세계는 질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은 꾸준히 새로운 주제에 새로운 기술이 사용되어 표현되고 있다. 작품에 사용된 이미지들은 상징적 의미를 갖거나 사실적인 이미지에서부터 초현실적인 이미지까지 아우르며 사용되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피카소가 떠오른다, 피카소의 일생 동안 새롭게 등장했던 다양한 작품세계가. 양순열의 작품을 반복적으로 보다 보면, 유사한 스타일과 이미지들을 사용한 다른 아티스트들을 떠올릴 수 있다. 비록 그의 작품이 때로 다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연상시키지만 그는 자신만의 분명한 작품세계가 있다. 그리고 다른 아티스트들도 그렇듯 양순열도 정통적인 미술 교육을 받았고 그것이 오늘날의 그의 작품 세계의 기반이 되었다. 그의 작품 세계가 진화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꾸준히 발생된 현상으로 보인다. 그는 전통 동양화에서 구축한 기본기에서부터 숙련된 추상화까지 발전시켜왔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란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는 어려서 나무와 꽃이 무성하고 새들이 지저귀는 시골에서 자랐다. 나는 이와 같은 환경이 그의 동양화의 섬세함을 만들었다고 보며, 그 때의 영향이 현재의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그의 최근 작품들은 색체에 대한 연구에 관한 것으로 미(美)를 뿜어내고 있으며, 바탕색을 사용하거나 관계성이 없는 형상들 사이 공간들을 부드럽게 연결해주는 색을 사용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본능적인 면과 지적인 면 모두를 내포한다. 다채롭게 변화된 그의 스타일에 대한 연구를 볼 때 그가 시골에서부터 도시로 이주했던 경험을 예측하게 한다. 섬세한 색체 시스템이 남아있으나 그의 삶을 지배했던 형상들 또한 유감없이 표현되고 있다. 그 형상들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시간을 초월하며 영원성이 있는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이다. 그가 철학적으로 짙은 관심이 있다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그의 작품이 독특하고 이례적인 반면 그의 작품은 다른 아티스트들, 즉, 자연을 주제로 시작하여 그것이 정신적 영역으로 흘러가도록 한 아티스트들과 교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정통적인 미술 교육을 수학한 이후 그는 정신적 세계를 관찰하는 에너지로 그의 작품세계를 펼쳐나갔다. 명확한 변화의 순간은 없다, 다른 아티스트들도 그렇듯, 그도 사실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 사이에서 오가며 항상 추상적인 상황에서 항상 어느 정도는 초현실적이면서, 절대적인 추상에 접근하고 있다. 그의 천상(天上)의 형태는 클림트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장난끼 있는 이미지들은 넓고 풍성한 배경 면으로부터 무작위로 등장하는데 이는 폴 클레의 작품에서 보이는 현상을 연상시킨다. 클레에게 선은 상징성을 동반했다. 형상의 외곽을 그렸고(contour), 시작과 끝이 이어지는 선은 거의 없으며, 아돌프 고트립, 마크 로스코, 혹은 조안 미로의 초기작품에서 발견되는 궤도 곡선 형태들을 연상시킨다. 클레는 일련의 미로(maze)를 만들었으며 그것은 몬드리안의 ‘항구와 바다’ 시리즈에서 선의 시작과 끝의 이어짐은 없지만 끊임 없이 열린 공간으로 움직이는 선들이다.     클레도, 몬드리안도 평면 공간을 다루었다. 그것은 초기 입체파와는 다른 스타일로서 더욱 평야 같은 공간이다. 그들의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평면성이 강조된 예술 풍조에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몬드리안의 항구와 바다 시리즈는 자연적인 형태에서부터 안내 시스템에서 사용되는 류의 형태까지 다양한 형태들을 사용하며 수직, 수평 선들은 추가되기도, 삭제되기도 한다. (그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 나무들의 형태가 이후 작품에서는 점차 변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선들 사이의 공간들은 주변 선들과 어우러지기 위한 색체로 채워져 있다.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무형태, 즉, 묘사적이기 보다 상징적으로 점차 바뀌었다. 선을 추가하고 삭제하는 과정에서 물 표면에 반짝이는 반사 면들을 조절하며 자연의 정신적 구조에 더욱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양순열은 그의 초기 작품에서 자연을 신중히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식물, 나무, 하늘, 그리고 지구를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스타일은 미국과 유럽의 아티스트들에게서 항상 나타난 것이다. 특히 독일에서 땅에 대한 애착은 알브렉 뒤러에서 안셀름 키퍼까지 지속적이고 자명하게 그들의 작품세계를 통해 나타났다. 양순열은 식물이 자라는 과정의 순간들을 점과 선을 통해 우아한 미(美)를 표현했다. 그의 테크닉은 매우 노련한데 이것은 피엣 몬드리안의 초기시절 그리고 빈센트 반 고호의 좀 더 자유로운 스타일까지, 네덜란드 화가들을 연상시킨다. 그 당시의 시대 정신을 기초로 볼 때 양순열 작품의 정신세계는 빛을 발한다. 양순열처럼 스페인 화가 피카소도 그의 작가인생에서 다채로운 스타일의 변화를 보였다. 그와 동시대 인물들인 브라크와 주안 그리스처럼 그도 입체파를 통해 오브젝트들을 다양한 시점에서 표현하며 형상의 외곽선을 그리는 것(contour)으로 캔버스를 채웠다. 양순열 작품에서 콜라주가 발견되는데 그것은 분석적인 입체파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스페인 화가 조지 브라크, 주안 그리스, 독일 화가 커트 슈비터즈, 그리고 러시아 작가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그와 같은 형식을 사용했다. 양순열의 작품은 분명 아시아 계에 뿌리를 두었지만 그의 작품이 발전된 양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감대를 갖고, 이것은 이와 같은 화풍을 갖은 수많은 동류의 아티스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양순열의 작품을 보며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화가는 카탈로니아 출신 스페인 작가 조안 미로다. 미로의 작품을 보면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이미지들이 있다. 미로를 천재라 부르는 이유는 그가 형태와 의미를 구분하여 표현하기 때문이다. 캔버스에는 전체를 아우르는 배경이 있고 그가 사용하는 선은 그 배경을 가로 지르며 흐른다. 형상은 색체로 채워져 표현되었고 다른 작품 속 요소들 사이사이에서 돌출되었다가 후퇴되었다가 한다. 결국은 작품의 감상자는 미로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들로 표현한 요소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합하여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상형문자적인 손 글씨는 추상표현주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초기 아돌프 고틀립과 초기 로스코의 작품이 그랬다. 양순열의 후기 작품들이 이와 같은 작가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다양한 크기의 원형 형태들을 사용하고 있고 불규칙적으로 날카로운 모서리로 된 형태들을 섬세한 색체의 추상적인 배경위에 흩뿌리며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작품 속 심리학적인 측면을 중요시했는데 그것은 아티스트들의 생각이나 관람자의 상상을 수반하기 위함이었다.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연결성이 없는 생각들을 한 작품에 두고 관람자로 하여금 그 이미지들에 대해 그들의 해석을 하도록 한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오브젝트들은 관람자의 상상을 자극한다. 이와 같은 기법의 대가로는 벨기에 아티스트인 르네 마그리트, 카탈로니아 출신인 조안 미로, 그리고 스페인 아티스트 살바도르 달리가 있다. 양순열의 작품 중 특히 <꿈과 사랑> 시리즈에서 이와 같은 측면이 발견되는데 이것이 그가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이다. 러시아 작가 바실리 칸딘스키는 자연에서 작품에 사용할 오브젝트의 형태를 발견하고 그것을 점차 추상화하여 원형은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이와 같이 작품 속에서 사물의 원래의 본질을 삭제하는 것은, 역으로, 내적인 파워로 가득히 채우고 정신적 세계로 가득히 채워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순열은 이러한 면에서 대가이다. 그의 클림트와 유사한 형태들을 처음 볼 때에는 쉽게 인식될 수 있는 인간의 얼굴과 특정 시대의 옷차림들이다. 형태적 측면에서 모든 인물들이 여성인 것으로 보여지나, 그 형태들이 추상화 될수록, 작품 속 바닥 형상의 끝자락과 연결되며 인물 형상들은 신비로운 요소가 된다. 이러한 착시현상과 함께 인물의 머리 부분은 점차 물음표와 같은 형태로 변형되고 있다. 양순열의 추상적 표현은 끝나지 않았다. 그의 작품이 발전할수록 그는 더욱 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가 배경색 위에 광택이 있는 컬러로 투명 배경을 만들 때 –색이 항상 스며들 듯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깊이가 있는 배경을 만들었다. 때때로 그 배경은 브론트의 <제인 에어>에서 등장하는 안개 속의 습지를 연상하게 하고, 그의 캔버스는 안개 속에서의 신비로운 인물 혹은 사물과 같은 느낌을 준다. 예를 들면, 물음표 형태의 머리를 가진 키가 큰 사람이나 동시에 도처에 존재하는 새와 같은 것들이다. 한 사전에서 “신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어떤 사건이나 사물이 매우 불명확하여 호기심이나 관찰을 유발시키는 것.” 이것이 순수미술 작품에 관람자로 하여금 꾸준히 관심을 갖도록 매혹하는 측면이다. 한 아티스트가 기술적으로는 훌륭하더라도 관람자의 관심을 끌 수 없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그 작품이 지나치게 관람자에게 설명을 하고 있을 때 그렇다. 양순열의 경우, 그의 기술은 숙련되었지만 동시에 관람자의 관심을 충분한 시간 동안 끌 수 있어 “누가”, “무엇을”, “왜”라는 질문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나아가 더 깊은 추상으로, 즉, 신비함을 더해간다. 이에 더하여, 그가 미술의 정통성에도 충실하여 타고난 색체 감각과 함께 균형 잡힌 형태를 표현하기 때문에 관람자는 차별화 된 감상의 기회를 갖게 된다.

  • 윤재갑, 큐레이터, "大母神(대모신) 오똑이"

    폴 길딩의 말처럼 지구는 어느덧 우리 인간들로, 우리가 만든 물건들로, 우리가 버린 쓰레기로 가득 찼습니다. 시인 박노해는 ‘이 풍요로운 가난의 시대’에 이쪽 동네는 영양실조로 죽어 가는 반면, 다른 동네의 쓰레기통은 차고 넘친다고 한탄합니다. 거기다가 기후변화와 팬데믹 등 이 시대 인류가 맞닥뜨린 ‘변곡점’과 ‘특이점’은 마치 시한폭탄처럼 매 순간 세계의 몰락과 인간의 죽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인류세’와 ‘자본세’가 초래한 이 위기는 인류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한치의 의심도 없이 지고지순한 가치라고 믿어왔던 인본주의나 휴머니즘은, 모든 사물과 자연을 도구나 노예로 취급하는 인간의 위선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정신과 물질, 주체와 객체를 나누고 차별해온 인간중심적 이원론이 이 위기의 주범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전대미문의 재앙을 겪고 나서야 인류는 겨우 스스로를 의심하고 반성하게 된 것입니다. 온 세상이 물에 잠기는 인류 최초의 대재난을 그린 영화 <노아>가 딱 이런 상황입니다. 노아가 신으로부터 받은 계시는 사악한 인간종을 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재난 이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인 자기 가족을 자기 손으로 죽임으로써 ‘세계의 구원’을 완수하려 합니다. ‘세계의 구원’은 ‘인류의 종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노아>의 묵시론적 세계관은 지금 우리, 현생 인류가 처한 암울한 딜레마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양순열 작가의 Mother Earth(대모신) 작품들은 이런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Mother Earth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근본적 분리를 해소하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과 사물들이 공생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과 사물을 포함한 존재 일반이 모두 평등하고 탈중심적인 인드라망으로 연결된 채 서로를 밝게 비추고 있다는 범동양적 화엄의 세계와도 같고, 인간중심주의에서 탈피해서 사물중심주의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서양의 ‘신유물론’적 사유와도 연결됩니다.   특히 도청 청사 마당과 호수 위에 설치되는 Mother Earth, Ottogi 작품은 모든 존재 일반으로 확장된 범우주적 모성의 회복을 통해 시대적 위기를 극복하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의 테두리를 넘어선 모성이며, 젠더의 경계를 넘어선 페미니즘이며, 인종적 차별을 감싸 안는 아프로퓨처리즘 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그것은 ‘인류의 종말’을 전제하는 <노아>적 구원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을 약속하는 ‘세계의 구원‘이 될 수 있습니다. <오똑이>는 그런 확장된 모성의 회복과 인류의 구원을 염원하며, 평화롭고 풍요로운 미래를 상징합니다. 경북 도민과 세계인이 그런 세상에서 다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 Yun Chaegab, Curator, "Mother Earth, Ottogi"

    A s Paul Gilding said, the Earth is full of us humans, full of things we made and full of our wastes. Poet Park Nohae laments that in this era of abundant poverty, one neighborhood is dying of malnutrition while the trash bins of the other neighborhood are overflowing. What is worse is that the ‘inflection points’ and ‘unique points’ faced by humans in this era such as the climate change and the pandemic, are accelerating the fall of the world and death of humans every moment like a ticking time bomb. This crisis caused by "Anthropocene" and "Capitalocene" calls for fundamental reflection on human civilization. The humanism which we have believed to be a noble and pure value without a doubt until now may just be hypocrisy of the exploiter who treats all things and nature as tools or slaves. I began to regard the anthropocentric dualism that has divided and discriminated against the mind and the material, the subject and the object is the main culprit of this crisis. It wasn't until we experienced an unprecedented crisis that we finally began to doubt and reflect on ourselves. This is exactly the situation depicted in the movie Noah, where the entire Earth is flooded and the mankind faces disaster for the very first time. Noah receives revelation from God to destroy all evil sinners. So Noah tries to ‘save the world’ by killing his family, the only surviving human beings, with his own hands. The world view implied in Noah that the ‘salvation of the world’ is only possible through the ‘end of mankind’ most dramatically manifests the grim dilemma that we humans face today.   Artist Soon-Yeal Yang’s works of Mother Earth are based on this reflection and introspection. Mother Earth suggests means to resolve the fundamental separation between humans and non-humans, and to co-exist and cooperate with all life and things on Earth. This is equivalent to the world of pan-Orientalistic Avatamsaka Sutra where existence of human beings and things are equal and interconnected by decentralized Indra’s net that brightly reflects each other, and it is also linked to the Western’s ‘New Materialistic’ reason that breaks away from human-centeredness and calls for a shift to object-centeredness.   In particular, the works of Mother Earth-Ottogi installed in the courtyard of the provincial government building and on the lake aspire to overcome the crisis of the times through the restoration of the pancosmic motherhood. It is the motherhood that transgresses the boundaries of family, feminism beyond the boundaries of gender, and Afrofuturism that embraces racial discrimination. Only then it will be a ‘salvation of the world’ that promises ‘salvation of the mankind’ and not the Noah-like salvation that premises on the ‘end of mankind.’ Ottogi symbolizes the peaceful and prosperous future, wishing for the restoration of such extended motherhood and salvation of mankind. I wish the residents of Gyeongbuk province and people around the world to live happily together in such a world.

  • 윤범모, 미술평론가,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양순열의 조형세계"

    원래 양순열은 이른바 동양화라고 불렸던 전통회화를 전공했다. 지필묵에 의한 사실적 표현법은 그의 예술가적 모태를 확인하게 한다. 그의 초기 작품을 보면, 간단한 선묘(線描)와 단순 구도 그리고 절제된 색채감각을 특징으로 읽히게 한다. 그러면서 화면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서정적이고 담박하다. 그래서 화가는 자신의 예술적 고향을 ‘동양회화’라고 강조하고 있는지 모른다. 비록 뒤에 서구적 어법으로 문맥을 바꾸었지만 그의 예술적 모태는 전통성에서 찾게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동양화 강의와 실기를 가르쳤다. 동양화는 참 맑고 따스하다. 내 어릴 적의 고향인 시골 다인처럼 포근하며, 개울물처럼 맑고 투명하다. 나의 존재는 물이었던가 보다. 가시로 막아도, 바위로 내리쳐도, 망치로 가루를 내어도, 나는 그저 흘렀던가 보다. 나의 모계는 분명히 동양화다. 아니 동양인 모두의 미술 뿌리는 동양화가 아닐 수 없다. 향수란 말은 때로는 정말 아름답다. 오십의 향수는 마루에 있음을.” 미술의 뿌리는 ‘동양화’라는 선언, 이는 작가의 예술적 위상을 점치게 하는 주요 열쇠 말이 된다. 더군다나 화가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물로서 비유하고 있다. 흘러가는 물, 이는 자연의 순리이고, 사회생활의 본령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지 모른다. 물처럼, 진정, 물처럼, 살아 갈수만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물은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낮추면서 낮은 곳으로만 흘러간다. 물은 내편 네편 나누지 않고 누구하고나 어우러진다. 민물과 짠물 구분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주장하지 않고, 물은 모두 강으로, 그리고 바다로 흘러간다. 이와 같은 자연친화주의는 동아시아의 존중받는 가치였다. 양순열의 그림 속에서 흘러가는 물의 이미지가 묻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 같다. 그동안 양순열은 미술계의 전면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하지 않았다. 흘러가는 물과 같은 이미지는 그의 작가활동 반경에서도 적용되었다. 그렇다고 그는 작가활동을 게으르게 한 것은 아니었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또 무슨 무슨 단체 등 패거리 의식의 현장과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그런 인상을 자아냈을 뿐이다. 그는 학고재 화랑 등에서 10회의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이 정도 경력이면 결코 무명작가라고 볼 수 없다. 아니, 양순열은 저서 발행에 나름대로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미 [시간의 바다를 깨우다] 등 5종의 저서를 발행한 바 있다. 특이한 이력이다. 이는 출판미술의 장점을 익히 알고 있는 작업의 결과물이리라. 더불어 그의 문학 지향의 측면도 고려하게 하는 부분이다. 양순열의 근작은 [시간의 숲 공간의 숲이 있었다]으로 묶여졌다. 역시 글과 함께 그림이 있는 출판물이다. 제목은 시간의 숲과 공간의 숲을 강조했다. 이는 시공간을 동시에 일컫는다. 시공간이 병존하는 숲, 거기에 화가는 꿈을 담는다. 양순열의 회화작업에서 꿈은 키 워드가 된다. 그는 꿈을 꾼다. 그것은 바로 회화작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람에게 꿈이 없다면, 그는 이미 사람은 아닐 것이다. 꿈은 인간 존재의 최소 단위이다. 하지만 꿈은 개인마다 다르고, 또 꿈의 실현가능성은 천차만별이다. 양순열의 꿈은 사랑이 있는 꿈이다. 그래서 그의 예술적 주제는 한마디로 ‘꿈과 사랑’이다. 대작 <꿈과 사랑>은 마치 연극무대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이러저러한 담론이 오고가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이면서 얇은 간색 위주로 색채의 온화함을 자아낸다. 그것도 동화 속의 여성주인공 같은 인물들이 여기저기 위치해 있고, 적당한 곳에 탁자와 같은 소도구도 동원되어 있다. 제목처럼 이 대작은 꿈과 사랑을 이국취미와 연결되어 도해한 듯하다. 소녀취향적 화면 구성이어서 일견 유약하게 보일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국취미의 동화적 세계와 연결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는 물론 가치평가의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요소이다. 평가야 어떻든 양순열의 조형세계는 꿈과 사랑의 무대이다. 그와 같은 개념과 함께 그는 ‘어머니’라는 개념을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화가는 근래 자신의 소망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한 어머니 길에서 아늑하면서도 평화롭고 자유스럽게 물처럼 자연스럽게 낮은 곳으로 흘러 흘러 가고 싶은 바램이다.” 양순열에게 있어 어머니의 모습은 각별하다. 하기야 어머니에 대하여 각별한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마는, 개개인의 입장에 따라 눈높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양순열의 어머니는 3개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구상적 인체형상/ 숙임의 미학 (희생) 오뚝이 형식/ 두 다리로 걷는다, 두 팔이 있다 (직선 형식) 어머니의 모습, 최대한 단순화된 형상이다. 고개 숙인 모습, 그것은 희생을 의미한다. 헌신적인 존재,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있고, 두 팔을 생략하거나 왜소하게 처리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최대한 낮추고자 했다. 여기서 어머니 모습은 하나의 기호이기도 하고 상징적 도해이기도 하다. “화가는 어머니 오뚝이 인연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부모의 존재를 다시 그려보기도 한다. 가족보다 더 소중함은 없다. 너무도 평범하고 흔하면서도 아주 깊이 있는 인간조화를 만들어 감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임을 자주 깨닫는다. 마치 쌀뜨물 발효액처럼.” 양순열의 조형세계는 꿈과 사랑과 어머니, 이와 같은 개념어로 이루어져 있다. 화풍상의 특징을 열거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구도의 단순화, 그러니까 화면구성이 지극히 단순하다. 절제된 화면은 양순열 회화의 주요 특징이다. 더불어 배경 역시 단순미를 강조한다. 단일한 색상으로, 그것도 커다란 여백처럼 처리되기 마련이다. 색채는 2차색 위주, 그것도 밝고 경쾌하면서 온화한 색상을 선호한다. 인체도 기호화하는 상징성, 이 역시 특징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런 배경 위에서 펼쳐지는 작은 연극, 정말 환상극의 한 장면처럼 몽환적이면서 상징적인 도상을 배치시킨다. 그것은 사실적으로, 혹은 추상적으로 나타난다. 혼란한 사회, 질곡과 모순의 시대, 이런 어둠 속에서 양순열의 작품은 하나의 청량제처럼 빛을 발휘하고 있다. 어둠의 현실에서 꿈과 사랑의 세계로 인도하는 전령사 같은 작품, 양순열이 지향하고 있는 세계, 바로 그와 같은 세계, 이제 우리들 앞에서 펼쳐진다.

  • Yoon Beom-mo, Art Critic and Former Director of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The Artistic World of Yang Soon-Yeal: Dream, Love, Mother"

    Yang Soon-Yeal originally studied traditional painting, also known as Oriental painting. Her use of paper, writing brushes, and ink sticks in realistic expressions reflects her artistic roots. Her early works are characterized by simple lines, limited perspectives, and restrained colors. At the same time, the overall atmosphere of these pieces is lyrical and ingenious. Perhaps this is how she emphasizes her artistic origins in Oriental painting. Even though her phraseology is expressed in Westernized terms, her artistic roots are firmly grounded in tradition, as reflected in the following statement: “(...) I gave lectures and taught classes about oriental painting. Oriental painting is pure and warm. It is cozy, like my hometown in the rural areas of Dain, and pure as the crystal-clear water of the streams. I guess my existence was like water. Despite being blocked by thorns, smashed by rocks or ground down by hammers, I feel like I continued to flow as is. My roots definitely come from the oriental painting. In fact, every artistic root of Asians cannot be anything other than oriental painting. The word “nostalgia” is sometimes a really beautiful thing. Nostalgia for the 1950s is on the wood floor.” Her declaration that the roots of art lie in Oriental painting is a key expression that defines her artistic identity. Furthermore, she presents her own existence through the metaphor of water. Flowing water represents both the natural order and the dynamics of social life. In this context, one can see the vitality of the old saying 上善若水 ("The highest virtue is like water"). If one could truly live like water, what obstacles in life would remain? Water humbles itself, always flowing to lower places. It does not discriminate between allies and foes but merges with all. It blends with both saltwater and freshwater, never boasting its own name, yet ultimately flowing into rivers and then into the sea. Such harmony with nature has long been a cherished value in East Asia. This may explain why traces of flowing water appear in Yang Soon-Yeal’s paintings. Yang Soon-Yeal has never positioned herself at the forefront of the art world. The image of flowing water is also reflected in her artistic career. However, this does not mean she has neglected her role as an artist. This impression arises only because she has maintained a distance from trends and artistic organizations. She has held ten solo exhibitions at Hakgojae Gallery—a remarkable achievement considering her career path. In addition to painting, Yang Soon-Yeal has made a significant mark in literature. She has published five books, including Awakening the Sea of Time , demonstrating a deep understanding of the power of art publications. Her literary engagement offers insight into her perspective as an artist. Her latest book, There Were the Forest of Time and Forest of Space , follows a similar format to her previous works, integrating both text and imagery. As its title suggests, the book emphasizes the forest of time and the forest of space—a reference to both temporal and spatial dimensions. This forest serves as the space where a painter embodies dreams. In Yang Soon-Yeal’s paintings, dreams are a central theme. She dreams—this is an alternative expression of her painting process. Without dreams, one may cease to be truly human. Dreams are the fundamental unit of human existence. However, each individual has a different dream, and the likelihood of realizing it varies. Yang Soon-Yeal’s dreams are infused with love. Thus, her artistic vision can be summarized as "Dream and Love."   Her masterpiece, Dream and Love , creates the sensation of various conversations taking place within a space resembling a performance stage. The dreamlike atmosphere is enhanced by the warmth of soft, half-tinted colors. Scattered throughout the composition are heroines from fairy tales, along with tables and various props thoughtfully positioned. True to its title, this work visually expresses dreams and love, linked to an appreciation for the exotic. At first glance, the piece may appear delicate due to its feminine aesthetic. Some may argue that the incorporation of fairy-tale motifs aligns with an exotic, whimsical hobby. However, such interpretations vary depending on individual perspectives and value systems. Regardless of critical assessments, the world Yang Soon-Yeal presents is a stage of dream and love. Along with these themes, the artist places great significance on the concept of motherhood. Recently, she expressed her aspirations, stating: "On the path of a mother, I wish to flow toward lower places naturally, like water, in a cozy, peaceful, and free atmosphere." For Yang Soon-Yeal, motherhood holds a profoundly special meaning. While it is true that everyone has personal emotions and experiences related to their mother, these sentiments differ from person to person. Yang Soon-Yeal’s concept of motherhood can be categorized into three symbolic forms: the Concrete Human Form, embodying humility and self-sacrifice; the Roly-Poly Figure, evoking resilience and endurance; and the Linear Form , defined by two arms and two legs, representing structural simplicity. The mother figure in her work is often depicted with a bowed head, symbolizing sacrifice and devotion. Her arms are either omitted or rendered small, visually diminishing her presence to emphasize selflessness. This representation of motherhood serves as both a symbol and a graphical expression of its essence. "The painter reflects on herself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other and the roly-poly toy, even revisiting the existence of parents. There is nothing more precious than family. By constructing a deeply profound representation from an extremely common and ordinary human form, the artist dares to acknowledge it as a universal symbol of all mothers in the world—like fermented rice-washed water." Yang Soon-Yeal’s artistic universe is defined by three fundamental words: Dream, Love, and Mother. If one were to describe her painting style, several key characteristics stand out. Her compositions are defined by a simple perspective, maintaining a minimalistic approach that avoids unnecessary complexity. She exercises restraint, deliberately steering clear of excessive embellishment to emphasize simplicity. Her backgrounds are often expansive, created with a single color to evoke a vast, open space. She predominantly employs muted, warm tones, favoring soft, secondary colors that enhance the overall atmosphere. Lastly, her figures are highly symbolic, serving as metaphors within the dreamlike worlds she constructs. Within these compositions, a small performance unfolds, akin to a scene from a fantasia. The interplay of realism and abstraction further enhances the symbolic and dreamlike qualities of her work. In an era marked by chaos, constraints, and contradictions, amid the darkness of contemporary society, Yang Soon-Yeal’s work shines as a guiding light. Her art offers a path to a world of dreams and love, providing an escape from harsh realities. Now, the world she envisions stands before us, waiting to be seen.

  • 김윤수, 미술평론가,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양순열의 그림에 대하여"

    화가 양순열은 대학에서 전공한 분야가 ‘동양화’였던 만큼 전통적 방식에 따라 한지에 지필묵으로 사군자와 실경산수, 꽃들을 많이 그렸는데 그 중에서도 들에 핀 갖가지 야생화를 자연 그대로 잘 그렸다. 특히 화선지에 수묵담채로 그린 야생화는 섬세하고 때로는 분방한 운필로 하여 들판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야생화의 원형에 다가서고 게다가 화가 자신의 소박하고 따뜻한 심성이 투영된 듯하여 보는 이의 정감을 더해주고는 했다. 그런 그림들로 그는 몇 차례 개인전을 가짐으로써 수묵담채로 그린 꽃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화가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의 그림이 아주 다른 그림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는바, 그림의 재료와 형식, 주제 모두가 그전과는 판이하여 도무지 같은 화가가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한 화가의 그림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있다면 왜 그런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그 이유를 그는 자신의 달라진 환경에 있다고 말한다. “풀과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고 소박한 꽃들과 풀들이 어우러졌던 구릉의 미감에 흠뻑 취해 살아왔던....안동”을 떠나 서울에 정착하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과 각기 다른 그들의 생각과,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동적인 혹은 조용한 관계와 직면하곤 한다. 자연을 보며, 자연과 함께 살아온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 사람들의 문제로 가슴을 가득 채워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하기 위해 화가로서 부닥친 문제는 한지와 수묵담채 이외의 더 적절한 매체와 표현방법을 모색하다가 캔버스에 유채로 그리기 시작하였는바, 유화는 곧 그가 사람사는 세상으로 눈길을 돌림에 대응하여 선택한 작업방식이었다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에 대한 관심, 인간 간의 관계, 인간이 바라는 것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사랑, 꿈, 행복, 희망, 존재, 욕망 등을 주제로 작업을 했는바, 이 그림들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대개 관념적이나 추상적인 것이었고 그러한 것을 그리려다 보니 인물을 추상적으로,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도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그려지고는 했다. 「깨달음」「경배」같은 그림이 그에 속한다. 이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05년 무렵부터이며 ‘Homo Sapiens’라는 제목으로 일련의 그림을 그렸고 2007년에는 같은 제목으로 화집을 내기도 했다. 이 그림들은 그가 그 전에 그려왔던 동양화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화가가 그때까지 해오던 그림 말고 다른 그림으로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며 더구나 중년기에 들어서는 더욱 쉽지 않은 일임에도 양순열은 그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래 들어 그의 작업은 또 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다. 조그마한 인체들을 소조로 빚거나, 혹은 나무를 깎아 만든 ‘군상’과 같은 설치작품을 하는가 하면 objet trouve(발견된 사물)로 작업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림 그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 ‘objet trouve' 는 일찍이 초현실주의 이래 현대미술에서 주로 활용되는 방식인데 이렇게 판이한 방법까지도 그가 활용한다는 것이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오브제작품 「아버지」에서 안전모는 ‘오늘의 한국을 일으킨 모든 아버지의 축약된 이미지’로, 「아버지의 의자」는 한시도 앉을 새 없이 일만하며 살다 간 이 땅의 아버지의 리얼리티를 즉물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 이러한 오브제 작품은 초현실주의나 팝 아트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방법이며 그의 관심이 이러한 매체로까지 나가고 있다는 것은 곧 인간에 대한 그의 관심이 확대되어감과 동시에 인간을 보는 눈이 한층 더 예리해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 화가가 스스로 익히고 달성한 자기 고유의 표현양식, 각고의 노력 끝에 획득한 자신의 개인 양식을 떠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 뿐 아니라 일종의 모험에 가깝다. 하지만 그러한 모험은 화가 스스로가, ‘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절실함이’ 다시 말해 ‘내적 필연성’에 의한 것일 때 그것의 성공 여부를 떠나 평가받을 만한 일이고 창조적인 화가의 길이다. 양순열은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화가 양순열은 “나의 바램은 내 작품에서 잠시나마 사람들의 영혼이 쉬어 가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아마도 그 바램을 위해, 더 나아가 할 수 있는 온갖 매체와 방법을 통해 그 바램을 드러내려 할 것이고 궁극적으로 그 세계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것이 어떤 작품일지 모른다. 이번 작품집은 아마도 화가 양순열이 자신의 바램을 향해 가고 있는 도정의 일단을 보여주는 소중한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Kim Yoon-Su, Art Critic and Former Director of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About the paintings of Yang, Soon-Yeol"

    Soon-Yeol Yang, the artist, majored in oriental painting in college. Therefore she drew a lot of paintings on traditional objects, like the Four Gracious Plants, landscapes, and flowers, and in a traditional method, using korean papers, a brush and chinese ink. Especially, she displayed her ability when she drew wild flowers in a field. Through her delicate and free-spirited brush touch, her flowers showed the close proximity to the archetype of wild flowers and seemed to reflect the artist's sincere and warm mind. She had a few individual exhibitions with oriental flower paintings and drew public attention as an artist who has a world of her own. However, from some point, her paintings began to change drastically. The material, form and subject of paintings were so different from those in the past that it was hard to believe they were painted by the same artist. One might question how the same artist's paintings could change so much and why was that happened. The answer she gave was changes of her circumstances. "I had left An-Dong where plants and flowers on a hill were everywhere, which I had enjoyed the beauty of them so much, and I settled in Seoul. In Seoul, I kept confronting with people with so many different thoughts and dynamic or still relationships, arising from them. Naturally, my heart was filled with problems of human being, and I, who had lived in nature, and lived with nature, began to approach on fundamental problems of human being gradually." The problem she confronted was to find a more suitable media and a way of expression to approach fundamental problems of human being and then she began to work with oil painting on a canvas. So oil painting was the way of work she chose as she began to drew her eye on a world with people in it. She gave a sincere thought to human being, human relationship and what people want and she worked on the subjects like happiness, hope, existence and desires. As the titles of her paintings suggested, her works were generally conceptual and abstract. In her paintings, figures were abstract and the space in which figures were located was unrealistic in order to express such conceptual and abstract subjects. Among her works, pieces like「Realization」and 「Adoration」are belong to this category. Since the year of 2005, she have been working on subjects mentioned above. A series of pieces entitled 'Homo Sapience' was one of her fruits in this period and she even published a book of paintings with the same title in the year 2007. Her paintings in the book was so different from what she had drawn before. She was attempting such a big change in her middle years although it was not easy for an artist changed his or her way. Recently, her work is showing another change. She molds figurines and chips wood to make installation work like 'Crowd'. Also she works with objet trouve (found object). They are totally different way of working from drawing. 'Objet trouve' is a method which has been used mainly in contemporary art since surrealism. It is surprising she is adopting such a far different method from what she had been using. In her work「Father」, a safety hat is 'a contracted image of every father who has made Korea today. 「Father's chair」immediately reminds us of a father in this land who was too busy to sit on a chair for a moment's rest. The method used in above works is different from that of surrealism and pop-art. it means that her interest in human being is expanding through these media and her eye on human being sharpened even more. Giving up an already acquired and accustomed way of expression of his or her own, throwing out personal style and then attempting a new one is not only a very hard work but also an adventure. When the adventure stems from the artist's urgency, that is 'inner necessity', that adventure should be respected regardless of its result because it's the road a creative artist dare to walk. That's the road Yang, Soon-Yeol is walking now. The artist Yang, Soon-Yeol says "I wish my work to be the place people's soul can rest even for a moment." In order to achieve her wish, to reveal her desire, she will try every medium and every way possible. I think she will got her wish ultimately. I don't know what kind of work can make her wish come true. However, what I know is this collection of her works will be a precious space that shows a part of journey she is taking to get her wish.

  • 코린 팀싯, ArtPremium편집장, 전 예루살렘미술관장, "근본의 랩소디"

    눈을 감아 보아라. 그러면 끝없는 공간의 광활함과 어두움, 시공간을 변형시키는 중력이 있는 매트릭스와 허공을 깨우며 만들어진 빛이자 “근본의 랩소디(本 Rapsody in Hypostasis)”인 침묵을 변모시킬 수 있는 빛 안으로 스며든다. 창조는 일시적이며 불변적이고 반복적인가? 또한 쟁취하거나 속하려는 야망과 함께 자 각을 가지는가? 목적을 지니고 있는가? 양순열 작가는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무의식적인 기억을 내면에 담고 있다. 때문에 작가는 우주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인간이 사는 우주 전체의 일부 입자 안에 새겨져 있다. 근본은 전체를 지탱하는 잠재된 본질이자 양순열 작가의 상상력과 그녀의 주된 작품인 «마 더 오뚝이(Mother Ottogi)»에서 보여주는 각각의 주제들과 연결된다. 인간의 형상을 표현한 양순열 작가의 «마더 오뚝이»는 단계적으로 층을 이루고 있는 세 개의 원형 곡선이 종합적으로 삼각형의 모양을 띠고 있는 조각품이다. 이 조각은 깊은 정 신을 지닌 입체의 집합체인 도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조각의 기반이 되는 하단부는 전체를 지탱하는 방사형으로 돼 있어 전체적으로 오뚝이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시간과 공 간을 뒤트는 중력의 움직임을 비롯한 조각 내 평형을 이루는 추를 작동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의 존재로 만들어진 «마더 오뚝이»는 음과 양 또는 남자와 여자처럼 상반되는 두 가 지 모두가 될 수 있다. 양순열 작가의 예술적인 창작 활동은 생명을 주는 행위를 상징한다. 그리고 생명을 주는 행위는 미래와 대화하는 과거이자 실체와 정신 사이의 현재를 지휘할 수 있는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이는 생명을 주는 행위가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인 정의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에게 공통으로 적용됨을 의미한다.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는 그의 저서인 «생명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vie ?)»를 통해 세포 내에는 여러 개로 번식하는 원자의 구조가 존재함을 제시하 다. 이처럼 인간은 타인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외로운 감정이라는 것 또한 인간이 조직망 으로 움직이는 존재임을 나타내며, 하나로 이어진 퍼즐의 조각들처럼 모두가 연결되어 있 음을 보여준다. 양순열 작가는 개개인에게 부여된 생명의 갱신과 더불어 세대를 아우르는 연장인 생명의 표상을 간파하고, 전 인류가 이를 자각하길 바라며 «마더 오뚝이»를 창조해 냈다. 자력으로 움직일 수 없는 물질들의 특징 중 하나는 차별성을 조직하며 분리가 되는 능력이 다. 물과 기름이 혼합될 때 구성 요소들은 자체적으로 분리가 되는데, 이는 자력으로 움직 일 수 없는 물질이 스스로 형성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복제의 자 동화된 메커니즘이라고 볼 수 있다. 화학과 물리의 법칙들은 모든 은하와 우주에서 동일하 게 적용되는데, «마더 오뚝이»는 생명과 창조를 부여하는 순환적인 자각을 보여주고 있 다. 또한 «마더 오뚝이»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처럼 각 오브제가 배수로 증식되어 감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작가의 표현 방식은 물질과 정신 사이의 작고 끝없는 공간 속 절대적인 완벽함을 가진 이상적 존재에 대한 탐구를 나타낸 다. 특히 «호모 사피엔스»는 양순열 작가가 15년 전부터 창작 활동을 통해 반복적으로 표현하 고자 한 주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즉, 인간의 진화 과정 중 최고의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동물적인 본능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예외성에 대한 탐구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순열 작가는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여 손으로 빚어 «호모 사피엔스» 조각들을 만들며, 이렇게 만들어진 조각들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들은 그녀의 손을 거쳐 다 양한 형태와 각각 다른 표현을 지닌 조각들로 거듭나고 있다. 또한 양순열 작가는 일시적 인 존재들의 삶과 죽음의 전개를 중재해 왔다. 이러한 존재들은 불완전한 인간의 이미지를 지닌 문명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그녀의 구조적이고 정돈된 중재와 신의 ‘전지전능한’ 행위의 중재로부터 문명이 만들어짐을 의미한다. 양순열 작가가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조각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고 있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 «브레인벌스트(Brainburst)»과 같이 태초의 혼돈이라는 관념 안에서 조 각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브레인벌스트»는 커다란 화폭에 자리 잡은 색채와 재료들의 무질서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작품을 통해 양순열 작가는 최초의 혼돈 또는 구 성된 관념의 비을 이야기하는 천지창조 이전의 혼돈을 표현하다. 이러한 작가의 통찰 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오브제와 «브레인벌스트» 같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게 하으며, 이를 통해 우리에게 천지창조의 역사를 속삭이고 있다. 자연은 작가에게 창의성과 보다 다양한 복합 매체를 만들 수 있도록 감을 불러일으킨 다. 특히 양순열 작가에게는 자연의 법칙과 색감, 빛, 요소들이 창작 모티브로 작용했다. 양순열 작가는 진흙, 브론즈(청동), 알루미늄, 플라스틱, 천, 끈, 색소, 비디오를 통해 작품 을 표현하고 있으며, 자연의 에너지를 통해 재조명된 실존의 필요성을 탐색한다. 또한, 양순열 작가는 달을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잘라진 형태 또는 동그란 형태의 캔버스 위에 그녀만의 열반적인 희망들을 담은 «드림 스케이프(Dream Scape)» 회화 시리즈도 선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지구의 반인 외딴 곳이자 인간 스스로 생각하며 재형성될 수 있는 아무도 없는 비어 있는 공간인 달 위에 작가의 시선을 옮겨 둔 작품이기도 하다. 양순열 작가는 «스칼렛(Scarlet)»을 통해 순수한 감정과 함께 몽환적이고 향수적인 이미 지를 전달한다. 이 작품은 커다란 화폭 전체를 색체로 덮어 채우는 회화 작업으로, 모노크 롬이나 비슷한 계열의 따뜻한 색과 빛을 사용하여 침묵 안에 섬세하게 자리 잡은 생명이 사는 태초 지구의 대기권을 표현하고 있다. 양순열 작가의 지속적인 창작에 대한 탐구는 삶의 중요한 순간들과 경상북도 의성 다인에 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의 일상 추억과도 리듬이 맞춰진다. 물질적으로 충분하게 갖춰져 있지 않았던 어린 시절,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들로 오자미 놀이와 딱지치기, 구슬치기 놀이를 즐겼던 그녀는 오자미와 딱지, 구슬을 작품에 담아 순수하고 행복했던 때를 표현하 고 있으며, 그녀만의 향수와 애정을 작품으로 구현하고 있다. 또한 작가의 추억처럼 천국에 가까운 행복감과 환희를 느끼며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비디오 작품으로 표현돼 있다. 제한 없는 공간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며 땅에 그려 둔 사방치기로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이는 순수하고 감동적인 너그러움을 지닌 인류애 를 연상시킨다. 양순열 작가의 작품은 도시의 높은 곳에 정박되어 있는 한 척의 배를 연상시키는 자하 미 술관에서 전시됐다. 미술관은 마치 주변의 무성한 자연을 다스리는 지배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미술관 앞 역사 깊은 도시의 장벽은 자연의 녹음 안에 잠겨 과거를 회상하게 한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을 지닌 자하 미술관의 침묵은 양순열 작가가 작품을 통해 들려주고자 하는 메아리와도 일치한다. 양순열 작가는 만물을 다스리는 작업으로 다각적이고 우주적인 자각을 바탕으로 천상계를 다루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그녀는 작품을 통해 랩소디로 만들어진 그녀만의 시를 낭송하며, 조화와 이타주의를 지닌 생명을 연장시키는 감동적인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 Corinne Timsit, Editor of ArtPremium, Former Director of Jerusalem Museum, "本 Rapsody in Hypostasis"

    Close your eyes and delve into the darkness. Penetrate the immensity of the infinite matrix space where time gets bet and where space becomes distorted by gravity, where the light retains the exclusive power to awaken or to create the void and to transform silence into a “Rhapsody in Hypostasis.”  Is Creation a punctual, constant or recurrent occurrence? Does it have any conscious ambition to conquer and perpetuate itself? Has Creation any purpose?  The subconscious memory of Yang Soon-yeal engraved in herself the history of the dawn of Creation, this cosmic knowledge etched in every particles inhabiting us and forming a part of a whole.  The hypostasis is an underlying substance supporting and sustaining the whole, and regarding Soon-yeal’s artwork it symbolizes the very link between each different themes disclosed in her imagination and notably in one of her major artworks “Mother Ottogi”.  A sculpture of all dimensions as it can represent a figurative form, with curved outlines in three shapes materializing a triangle and delineating a geometrical figure in a spiritual aspiration.  Keeping altogether the balance of the work, the base is curved to trigger the movement of the pendulum and the gravitational fields bending time-space. “Mother Ottogi” is the demonstration of the unity existing in the duality of two  opposing forces such as Ying and Yang, Man and Woman. Maternity for Soon-yeal –in the intrinsic sense of the interconnection between past and  future conversing with one another and enlightening present times in the material and spiritual- doesn’t have any feminine nor masculine definition. It appears rather in the core significance of her artistic concept as the gestation towards which Humanity is driven.  Erwin Schrödinger in his book What Is Life ? suggested that atomic structures hypothetically living in the cells were organizing themselves in order to reproduce.  We all have this perpetual quest of the Other. Our feelings of solitude and incompleteness reveal how we are made to function inside networks as puzzle pieces unveiling their meaning solely when connected.  Yang Soon-yeal perceived this inner renewal insight towards Life given to each individual, the generative renewal she calls “Maternity” that she fathomed and materialized in “Mother Ottogi” so as to awaken a universal consciousness.  One characteristic feature of the inert substance is its capacity to compartmentalize. It organizes itself to create a differentiation. When you mix oil with water, they separate into thin layers deposited on the surface, proving that inert matter can self-organize. It seems to be a result of the automatic mechanisms of the replication principle in chemistry.  Laws of physics and chemistry are the same in the whole universe and congruent with the entire cosmos. The “Mother Ottogi” works array this  consciousness of the rhythm able to give life to the matter and to creative thinking.  “Mother Ottogi” as well as « Homo Sapiens » manifest themselves thanks to the multiplication that Soon-yeal exhibits in her installations, in a search for the representation of an ideal being who rose to the absolute perfection of the indefinite fraction of the space between spirit and matter.  “Homo Sapiens” are a sequential theme that Soon-yeal has been exploring for 15 years, seeking the exceptionality of the human being liberated through time and history from his animal instincts so as to emerge as a better self in the grand scale of human evolution. However Soon-yeal models with her own hands each “Homo Sapiens”, breathes life into them by utilizing numerous materials, thus forming unique configurations and expressions to each and every one of the hundreds of Homo Sapiens she kneaded and shaped. She intervenes in the life-giving impetus and in putting to death those fleeting existences, of this civilization in the making created in the image of humans in all their flaws and imperfections. Yet this time they are moulded by a methodical intervention coming from a structured and orderly action, “divinely” omniscient.  This insatiable “Homo Sapiens” evolving in time was composed in the idea of the primitive chaos, as well as the body of work “Brainburst”. The large-scale paintings, explosively intense, are flecked with a tumult of stirring colours and ebullient materials in a sort of commotion narrating the secrets of a pending conception or of the primordial chaos. This prescience led Soon-yeal to  nourish the matter with both Homo Sapiens and “Brainburst” paintings, and to whisper to us the history of the Genesis.  Nature is involved in Soon-yeal’s multimedia creative variations. It dictates its laws, the chromatic and materials choices and the lessons learned from light. Be it with clay, bronze, aluminum, plastic, textile fabrics, ropes, pigments or video, she probes the existential need to live in a reformatted dimension by spiriting away nature’s energy. Thus, with the paintings from the series “Dream Scape”, Soon-yeal discloses her heavenly hopes on round shaped canvas or cut mimicking the lunar orb. The eyes are raised towards the moon as a blank space, uninhabited, where humanity can reconstitute itself and rethink its actions in an elsewhere, mirror of Earth.  This oneiric and nostalgic vision conveys Soon-yeal’s ethereal emotions in her art piece named “Scarlet”. Large paintings take over the canvas, inundate it with areas of colours. Those spacious flat tints, almost monochromes or with luminous and warm tones, evoke the original atmosphere of the earth when life forms ingeniously subsist among an articulated silence.  This relentless pursuit of Creation is punctuated by milestones but also by simpler events of Soon-yeal’s everyday life as a child in Andong in the North Gyeongsang Province in South Korea. This period was tinged with a traditional culture, without much financial resources, as all the materials that could be possibly found were converted into toys: Ojami, Ddakji and Guseul are the works that the artist tenderly put together to celebrate with immense tenderness and nostalgia this time when it was all so much easier, when all the  materials had an innocent and joyful genuineness. This latent happiness, almost idyllic, emerges from the videos of children playing in laughter and euphoria. Skipping ropes are lying on unrestricted and welcoming areas, hopscotch squares are marked out on the ground, everything in perfect accord and conversation reminding us of humanity in its full innocence and emotional generosity.  The exhibition is presented in the Zaha Museum, anchored like a ship in the upper part of the city, supreme ruler over the surrounding exuberant nature. The alert walls of the old town face the museum buried in lush greenery and keep the past alive and alert. The silence of the place acclimated itself to echo Soon-yeal’s fecund work.  It is a work of universal vocation, narrated with a planetary dimension through a cosmic and multidimensional consciousness. Soon-yeal chants her poetry in rhapsody, contemplating and foreseeing the day when Humanity under the reign of emotions will renew Life by giving

  • 최은주, 현 서울시립 미술관장, "어머니, 오똑이 (Motherly Ottogi)를 세우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한 그 위대한 순간 이후로, 인간은 인간의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을 초월한 신은 존재하는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양순열을 평생 동안 쫓아다닌 큰 화두이다. 그리고 그는 일상의 어느 순간에서도 그 질문을 놓쳐버린 적이 없었던 작가임을 40여년에 걸친 그의 방대한 작업이 보여준다. 심지어 1990년대 전반기에 이 작가가 그린 꽃, 나무, 자연풍경에서 조차 이 작가의 마음속에 무엇인가 매우 원대한 질문들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감지하게 한다. 붓질에는 자신이 있었던 양순열은 그의 눈에 닿는 자연의 모습들을 소중히 그려냈다. 이 시기 양순열이 그린 그림들을 살펴보면 식물의 줄기는 무성하기 짝이 없고 다소곳해야 할 꽃잎의 모양새는 방사선으로 뻗어 나간다는 느낌을 준다. 옥수수를 그린 그림에서 옥수수 줄기는 화면 바닥에서 끝까지 뻗어 올라 화면을 뚫고 나갈 듯 힘찬 기세를 보여준다. 2003-4년 연간에 그린 <화심(花心)> 시리즈에서는 몰골법을 사용해서 대상물의 모습을 생략하거나 과장하는 기법을 사용했는데, 이 그림들에서 작가는 꽃을 구성하고 있는 꽃대 한 줄기, 흐드러진 꽃잎 한 잎 한 잎에 마치 우주적 질서를 다 담으려는 듯 결연했음을 보여준다. 같은 시기 종이 위에 잉크와 펜을 사용해 그린 드로잉들은 선묘와 흩뿌리기 기법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식물의 형상성을 훨씬 뛰어 넘는 표현력을 구사했다. 자연의 대상물을 재현할 때조차, 작가의 의식은 보다 더 근원적인 차원, 보다 더 광활한 우주적인 차원을 그리려고 한 것이다.     1998년 양순열은 운주사를 답사하고 그곳에서 부처의 형상을 그린다. 처음에는 부처의 형상을 단독으로 그렸지만 어느 순간 부처의 형상은 하나가 아닌 두 개의 덩어리로 분리되는 듯이 그려진다. 부처에서 인간이 분리되는, 혹은 인간에서 부처가 탄생하는 무의식의 발로였던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아무튼 반복되는 부처의 그림들 속에서 양순열은 “호모사피엔스”라는 그의 필생의 주제를 도출해 내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이 수많은 그림들을 통해 시도됐다. 다분히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그린 2007년의 <경배>, <욕망>, <깨달음>은 전기 “호모사피엔스” 시리즈의 종결판 같은 작품들이다. 세로길이만 2M가 넘고 가로 길이가 4M, 5M가 넘는 대형 캔버스에 양순열은 인간의 욕망과 그와는 상반되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경배감, 존재론적 깨달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우선 <욕망>이란 작품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회색빛 톤의 화면에 번데기 같은 덩어리 형상 3개가 그려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 욕망의 형상화를 통해 작가는 욕망에 기인한 불안과 위태로움, 파국 등에 대한 상징적 언급을 시도했다. 반대 지점에 <경배>와 <깨달음>이 놓여 있다. 양순열은 <경배>라는 작품에서 두 사람의 인물을 화면의 오른쪽과 왼쪽에 그려 넣었다. 인간의 형상은 자세히 묘사되기 보다는 인체형상임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거칠게 그려졌는데 이런 표현방식은 오히려 <경배>하는 인물들의 경건한 마음가짐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양순열은 어떤 미동에도 흔들림 없는 강건한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다. 대지에 굳건히 발을 딛고 고개 숙여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깨달음>이라는 작품은 <욕망>과는 전혀 다른 인간과 자연 혹은 초월적 존재를 향한 신성한 마음의 은유를 보여준다. 마치 모아이 석상처럼 머리와 몸통으로만 구성된 원형적 형태의 인간이 화면을 가득 채운 이 그림에서 무엇인가에 대한 경배의식을 수행하는 인간 군상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득히 먼 고대의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 수행되었을 거룩한 의식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깨달음>이라는 작품은 2006년에 그려진 작가의 작은 드로잉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지닌다. 이 작은 드로잉에서 작가는 붉은 태양을 화면 오른쪽 위에 배치하고 그 아래에 여러 개의 선돌을 그려 넣고 붉은 물감으로 채색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의 서명이다. <二ㅇㅇ六 太陽人 順烈>이란 또렷한 서명에서 우리는 작가 양순열이 어떤 각오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개척해 나갈 것인가를 예상할 수 있다. 운주사 부처의 드로잉으로부터 시작된 인간, 호모사피엔스에 대한 관심이 화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일체화 되어 나갈 것임을 선언하는 서명이다. 작가와의 대화중에 이 시기 호모사피엔스 형상들이 지닌 특징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형상들이 서 있는 형태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이 형상들은 양순열의 그림 안에서 마치 안테나 같은 기능을 한다. 작가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며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 인간과 신, 인간의 꿈과 사랑 등에 주파수를 맞추며 호모사피엔스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 온 것이다.       양순열이 2009년에 그린 <꿈과 사랑 어머니꽃(Dream & Love Motherly Flower)>이라는 작품 역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80x180cm, 족자 그림의 형식을 빌린 화면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수묵기법을 사용했는데 화면의 오른쪽과 왼쪽에는 거칠고 진한 먹물의 번짐이 자리 잡았다. 화면의 중앙에는 뭔가 솟구치는 밝은 공간이 등장하는데 그 사이로 꽃의 형상과 하트의 형상이 오버래핑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양순열의 나이 오십, 지천명의 세수에 이르러 작가는 작품의 제목처럼 어머니꽃을 그렸다. 그런데 화면의 중앙과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치우친 부분에 등장하는 배부른 여성의 형상. 생명을 배태한 어머니의 표상이 금색 물감으로 슬며시 그려져 있다. 이 여성을 금색으로 채색함으로써 양순열은 영원히 변치 않는 모성애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호모사피엔스에 대한 집요한 탐색이 모성애라는 주제로 확장되고 있음을 이 작품이 보여준다.     호모사피엔스와 모성애라는 주제가 양순열의 예술세계에 등장한 이후로 이 작가의 작업 역량은 훨씬 더 폭발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시리즈, <클라라 슈만(Clala Shumann)>같은 초상 시리즈, 2009년 이후에 등장한 <아버지의 의자>, <백미러>, <땅콩>, <워커의 조국>같은 오브제 작업들을 거치면서 양순열은 그의 모든 감각, 모든 감수성, 모든 환상과 상상까지를 다루는 창작의 열병을 견뎌냈다. 양식적으로는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양식을 드러낼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이 단계에서 등장한 것이 양순열의 가장 대표적 예술작품으로 평가되는 오똑이 조각과 오똑이 형상이 후기 호모사피엔스의 회화적 비전으로 완성되는 <현현> 시리즈 이다.     오똑이 조각은 2011년부터 제작됐다. 처음에는 양순열의 그림에 소품처럼 나타나는 소재였던 오똑이는 손안에 들어갈 만큼 작은 크기로, 작은 아이만한 크기로, 등신대의 크기로, 혹은 3-4M의 큰 키를 가진 조각으로 만들어져 세계 곳곳에서 전시되었다. 긴 치마를 입은 어머니 형상의 오똑이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모성애로서 자식과 세상을 감싸 않는 어머니의 사랑처럼 양순열의 오똑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다. 작가노트에서 양순열은 자신의 오똑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 오똑이 Ottogi 네 마음의 汝 너의 오똑이 내 마음의 我 나의 오똑이 미술가의 상상세계로 오뚝이 형상을 어머니 형상으로 모성을 투영해 보았다. 모성은 늘 사랑과 믿음, 비움과 숙임의 본질로 가능하다. 모성은 우주와 한 마음이 되고 인간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나아갈 때 가능하다. 우리 삶이 우상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긍정적인 부적 같은 에너지덩어리 자체이다,”     양순열은 이제 인간의 갖가지 욕망과 그에서 빚어지는 인류세의 종말을 순수한 모성으로 극복하자고 이야기하는 예술가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메시지는 그의 페르소나, 어머니 오똑이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에서, 인간성이 메말라버린 마천루의 대도시에서, 인간과 동물이 모두 굶주림에 시달리는 황무지에서 양순열의 어머니 오뚝이는 생명의 소중함과 인류의 구원과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게 해 주는 존재이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연결되어 있다는 신념, 그 신념의 중심에 어머니 오똑이를 굳건하게 세워 모성의 힘을 다시 일깨우는 예술가, 양순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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