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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시를 그리는 양순열 화백의 그림 - 김주영(소설가)

작성자 사진: Yang Soon-YealYang Soon-Yeal

최종 수정일: 2020년 3월 22일

나는 그림을 볼 줄 모른다. 그리는 것은 물론 감상할 줄도 모른다. 딱히 친숙하게 지내는 화백도 없다. 뿐만 아니라, 그림에 대한 이론적인 평가 또한 내가 가진 자질과 소양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어떻게 이 글을 쓰겠다는 것에 선뜻 동의 해버렸는지 내 스스로에게 당혹스럽다. 굳이 까닭을 찾자면 나의 겸손하지 모함과 신중하지 못함과 철없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대로 고백한다면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나는 한동안 주저하였다. 당황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양 순열 화백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양순열 화백으로 말하면, 이미 화단에선 중진을 넘어 원로의 대접을 받는 분 일진데, 이론적으로나 그 명성에 있어서나 고매한 경지에 이른 화단의 원로들에게 글을 청탁할 법도 한데, 어째서 전혀 무뢰한인 나를 찾아 낼 생각을 가졌을까. 나름대로 그 연유를 찾아내겠다고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끌게 되었다. 그의 화집을 뒤지고 또 뒤지며 시간을 끌었는데도 속 시원한 해답은 곧장 얻어 낼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한 것이라면, 나는 매우 가슴 쓰라린 추억을 가지고 있다. 나는 양순열 화백의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골 마을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가난했기 때문에 학용품은 물론 교과서도 없이 초등학교 6년을 보냈다. 그 학교의 학습과정 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미술시간이 배정되어 있었는데, 그 시간이 닥치게 되면, 나는 잡기장을 찢어서 교실 바닥에서 주운 몽당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시골 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항상 같은 풍경이었다. 교실 창밖을 바라보면 바로 코앞에 앞산이 바라보이고 그 산 아래로 내가 흐르고 있었다. 연필로 대충 산과 내를 그린 다음 나는 그림에 덧칠 할 크레용을 빌리려 온 교실을 쏘다녔다. 그러나 반 아이들 대다수도 나처럼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앞산과 내를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파란색과 푸른색 크레용들은 일찌감치 동이 나버렸기 때문에 언제나 새것 그대로 남아 있는 흰색 크레용을 어렵사리 빌려와서 산과 내 그리고 하늘에 떠있는 해까지도 모조리 흰색으로 칠한 다음 선생님에게 제출하게 된다. 아이들의 그림을 점검하던 선생님은 십중팔구 나를 앞으로 불러내어 귓밥을 잡아당기며 창문을 열어젖히고 삼엄한 얼굴로 앞산을 가리키며 무슨 색깔이냐고 묻게 된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내가 색맹은 아니었으므로 산이 파란 색이란 것을 모를리 없다. 그런데 파란색인줄 빤히 알면서도 왜 흰색을 칠해야 했는지 그 속 쓰린 사정을 선생님에게 설명하려들면 눈물부터 쏟아지던 슬픈 기억을 갖고 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전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미술 시간이 들어 있는 요일에는 의도적으로 배가 아프다 핑계대고 등교하지 않았다.

그 이외에도 나는 가난했으므로 경험해야 했었던 많은 아픔과 상처들을 갖고 있다. 그 슬픈 기억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깔려 있었다. 가난했으므로 감내해야 했었던 모든 고초와 시련은 어머니란 존재가 제공하고 있다는 편견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이 갖는 성격적인 결함은 강한 자존심을 갖고 태어난다는 말처럼 나 또한 그랬기에 상당한 기간 동안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저주를 안고 살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70세 이후에 쓴 <잘가요 엄마>라는 소설을 쓰면서 작가의 말에 이런 말을 썼다.

<철부지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 내 생애에서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 부끄러움을 두지 않았던 말은 오직 엄마 그 한 마디뿐이었다. 그 외에 내가 고향을 떠나 터득했다고 자부 하였던 사랑, 맹세, 배려, 겸손과 같은 눈부신 형용과 고결한 수사들은

속임수와 허물을 은폐하기위한 허세에 불과했다>

그제서야 나는 양순열 화백이 어째서 내게 이글 써주기를 요청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양숭열 화백의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어머니, 태어나서 백년을 부르고 오랜 시간 부르고 또 부를 어머니. 부르고 또 불러도 영원한 우리 어머니, 어머니> 짧은 글이지만, 곱씹어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 벅차오르는 이 글에 양순열 화백의 맑고 숭고한 영혼이 춤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던 글을 쓰던 혹은 작곡을 하든 그 모든 예술 활동들은 방향이나 갈래는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어떤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같은 정점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는 것을 양순열 화백의 그림에서도 깨닫게 된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쫓아가는 영혼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영혼의 탐구일진데, 그림이면 어떻고 글이면 또 어떻겠는가. 뎃싱이 잘되고 못되고를 따지는 것은 항상 그러하듯 지금 막 출발하려는 사람들의 몫이다. 문장이 어떠하다는 것을 따지는 일도 출발선상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경지에 이르면 그런 잡다한 것들이 모두 허튼짓이란 것을 나는 양순열 화백의 그림에서 진하게 읽는다. 그의 그림에는 많은 어머니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또 그렸는데도 또 다시 어머니는 끓임없이 나타난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부르고 또 불러도 영원한 우리 어머니>. 왜 그럴까. 어머니는 하느님이 당신 대신에 이승으로 보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그림은 일상생활에서 얻어낸 이미지를 형상화 한 것이라고 믿는다. 양숭열 화백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형상화하려는 예술적 노력 속에는 남과 달리 어머니의 존재가 너무나 그득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이 양순열 화백의 영혼을 만들고 있으며,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고결한 시가 존재하고 있다.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2014년 가을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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