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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그리는 순정스런 열정 - 양순열의 첫 개인전을 축하하며, 이태호 (전.전남대교수, 미술사 현.명지대교수)

작성자 사진: Yang Soon-YealYang Soon-Yeal

최종 수정일: 3월 9일

안동 시내의 양순열이 조용히 작업하는 공간에 들어섰을 때, 그가 애써 그려온 산수풍경화 작품들이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평이한 야산을 배경으로 펼쳐 놓은 옥수수밭과 숲, 들녘의 풍경들은 언뜻 그림으로 소화하기 힘든 소재인데도 불구하고, 엷은 청록색 담채로 그린 풀빛의 풍경화를 무던하다 싶을 정도로 고집스럽게 시도해온 것 같다. 양순열의 말대로 어려서 눈에 익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게다.

“내게 자연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산다는 것을 자연에 어울려 지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이 성공적인 것인지 아닌지 조차도 자연의 일부로서 욕심 없이 살아가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있다고 느낀다.


어쩌면 완벽한 착각일지도 모르는 나의 이 생각은 두렁을 따라 쑥뿌리를 캐고 꽃놀이를 하던 내 유년의 기억이 완전한 아름다움으로 추억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완전한 아름다움의 세계 그것은 이제 지난날의 기억으로서가 아니라 가보고 싶은 이상향으로서 나를 유인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자연의 체취를 느끼며 그 숨결과 느낌을 나의 화폭에 소중히 기록하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산수화 내지 그림들은 대부분 “길섶에 핀 제비꽃의 청초함이나 흐드러지게 피어 줄기가 휘어 보이는 개나리의 모습이나 따뜻한 햇살을 받아 싱싱하게 솟아나는 풀색이 짙은 잎 사이에 신비하게 피어나는 솔붓꽃에서 받는 느낌을 전달……”

-(형상의 파장)전 팜플렛에서, 서울 후인갤러리, 1993- 해보려고 노력해온 결과물이다.


양순열은 고향이 안동에서 멀지 않은 의성 다인이라 한다. 중학교 때부터 대구로 유학하여 오랫동안 도회생활로 가꾸어졌음에도 순정스런 시골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다. 버거운 소재이면서도 그렇게 풍경화들을 꾸준히 선보여 왔던 모양이다.


풍경화와 함께 그려온 호박이나 호박꽃, 옥수수, 들풀이나 꽃 그림에도 양순열의 순정스런 심성이 잘 드러나 있다. 풍경화보다 오히려 꽃 그림들의 경우에서 양순열의 기량이 돋보인다. 제비꽃, 진달래, 찔레꽃, 여뀌풀꽃, 분꽃, 솔붓꽃, 할미꽃이 핀 풀밭에 잠든 딸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은 차분한 담채로 조심스러우면서도 욕심 없이 그려낸 까닭이다. 풋풋하면서도 다감한 매력을 풍기며, 소담하고, 예쁜 그림들이다. 그런 반면에 선운사의 여정 중에 포착한 동백꽃이나 호박꽃 같은 그림은 가벼우면서 활달한 필선의 맛이 유연하고, 때론 봄 들녘의 들꽃과 그 화사한 분위기를 소담하게 추상화 시킨 작품들도 눈에 띈다. 이들과 더불어서 양순열의 그리운 고향은 호박과 호박꽃, 그리고 옥수수 밭을 담은 가실 그림에서 가장 잘 살아나 있다. 노란 호박꽃과 호박 잎의 대담한 설정과 수묵처리, 옥수수밭을 수묵선묘만으로 넘치게 구성한 화면운영, 옥수수밭 사이로 기어가는 방아깨비나 고랑에 함께 핀 풀꽃의 재치 있는 배치 등은 그의 다른 어떤 소재의 그림보다 자신의 솜씨를 마음껏 펼쳐 놓았다. 그리고 양순열 회화의 발전 가능성도 이런 호박이나 옥수수와 관련된 그림을 통해서 새삼 확인해 볼 수 있고, 이번 첫 개인전의 성과를 가늠케 하는 작품들을 내놓은 것이다.

양순열은 대구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결혼한 뒤 안동에 터를 잡고서야, 대학원을 진학하였고, 뒤늦게 다시 붓을 들었다. 그는 또 가정을 꾸려가는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해가며 그림을 그려야 하는 또 다른 짐을 지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전반적으로 양순열의 그림들을 그도 수긍하듯이 전업작가로서의 세련된 면모보다 설익은 아마추어적인 것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가슴 깊이 응어리진 그림에 대한 열정이 언제든 솟구칠 준비가 되어있는 듯하고, 또한 그것을 억제하면서 생활을 이끌어가는 지혜도 갖추고 있다. 이같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가꾸어내는 양순열의 열정과 노력이 어설픈 가운데서도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그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의 촌아낙 같은 첫인상처럼.

기왕 시작한 만큼 지금까지 5~6년의 짧은 기간 쌓아온 그림들을 뒤돌아보면, 그리고 앞으로 계속 다져간다고 치면, 우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추억을 담는 일은 물론이려니와 지금 양순열의 현실 삶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작업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고향생각이 깊었던 만큼 옥수수 밭이나 호박 그림이 돋보이듯이 자신의 손길에 익은 혹은 자신이 가장 소중스럽게 여기는 것들도 놓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수풍경화의 경우는 커다란 방향전환을 요하는 영역이다. 그가 석사논문으로『겸재의 실경 산수화가 현대에 미친 영향』(1995.2)을 썼듯이 우리 미술사에서 풍경화의 고전인 겸재에서 청전과 소정에 이르는 산수화법을 공부하는데 새로이 시작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안동일대의 산세와 계곡풍경들은 고전적인 화풍에 근사하기에 더욱 그렇다.

이러한 점들을 보완하면서 자신의 화업을 쌓아간다면, 잔잔한 가운데 양순열 나름의 예술사를 창조해 낼 것으로 믿는다. 그의 조신하면서도 고집스러워 보이는 용모나, 순박하면서도 치열하게 살아라는 이름처럼.


이태호 (전.전남대교수,미술사 현.명지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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