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열의 뛰어난 작품세계는 질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은 꾸준히 새로운 주제에 새로운 기술이 사용되어 표현되고 있다. 작품에 사용된 이미지들은 상징적 의미를 갖거나 사실적인 이미지에서부터 초현실적인 이미지까지 아우르며 사용되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피카소가 떠오른다, 피카소의 일생 동안 새롭게 등장했던 다양한 작품세계가.
양순열의 작품을 반복적으로 보다 보면, 유사한 스타일과 이미지들을 사용한 다른 아티스트들을 떠올릴 수 있다. 비록 그의 작품이 때로 다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연상시키지만 그는 자신만의 분명한 작품세계가 있다. 그리고 다른 아티스트들도 그렇듯 양순열도 정통적인 미술 교육을 받았고 그것이 오늘날의 그의 작품 세계의 기반이 되었다. 그의 작품 세계가 진화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꾸준히 발생된 현상으로 보인다. 그는 전통 동양화에서 구축한 기본기에서부터 숙련된 추상화까지 발전시켜왔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란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는 어려서 나무와 꽃이 무성하고 새들이 지저귀는 시골에서 자랐다. 나는 이와 같은 환경이 그의 동양화의 섬세함을 만들었다고 보며, 그 때의 영향이 현재의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그의 최근 작품들은 색체에 대한 연구에 관한 것으로 미(美)를 뿜어내고 있으며, 바탕색을 사용하거나 관계성이 없는 형상들 사이 공간들을 부드럽게 연결해주는 색을 사용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본능적인 면과 지적인 면 모두를 내포한다. 다채롭게 변화된 그의 스타일에 대한 연구를 볼 때 그가 시골에서부터 도시로 이주했던 경험을 예측하게 한다. 섬세한 색체 시스템이 남아있으나 그의 삶을 지배했던 형상들 또한 유감없이 표현되고 있다. 그 형상들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시간을 초월하며 영원성이 있는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이다. 그가 철학적으로 짙은 관심이 있다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그의 작품이 독특하고 이례적인 반면 그의 작품은 다른 아티스트들, 즉, 자연을 주제로 시작하여 그것이 정신적 영역으로 흘러가도록 한 아티스트들과 교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정통적인 미술 교육을 수학한 이후 그는 정신적 세계를 관찰하는 에너지로 그의 작품세계를 펼쳐나갔다. 명확한 변화의 순간은 없다, 다른 아티스트들도 그렇듯, 그도 사실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 사이에서 오가며 항상 추상적인 상황에서 항상 어느 정도는 초현실적이면서, 절대적인 추상에 접근하고 있다.
그의 천상(天上)의 형태는 클림트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장난끼 있는 이미지들은 넓고 풍성한 배경 면으로부터 무작위로 등장하는데 이는 폴 클레의 작품에서 보이는 현상을 연상시킨다. 클레에게 선은 상징성을 동반했다. 형상의 외곽을 그렸고(contour), 시작과 끝이 이어지는 선은 거의 없으며, 아돌프 고트립, 마크 로스코, 혹은 조안 미로의 초기작품에서 발견되는 궤도 곡선 형태들을 연상시킨다. 클레는 일련의 미로(maze)를 만들었으며 그것은 몬드리안의 ‘항구와 바다’ 시리즈에서 선의 시작과 끝의 이어짐은 없지만 끊임 없이 열린 공간으로 움직이는 선들이다.
클레도, 몬드리안도 평면 공간을 다루었다. 그것은 초기 입체파와는 다른 스타일로서 더욱 평야 같은 공간이다. 그들의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평면성이 강조된 예술 풍조에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몬드리안의 항구와 바다 시리즈는 자연적인 형태에서부터 안내 시스템에서 사용되는 류의 형태까지 다양한 형태들을 사용하며 수직, 수평 선들은 추가되기도, 삭제되기도 한다. (그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 나무들의 형태가 이후 작품에서는 점차 변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선들 사이의 공간들은 주변 선들과 어우러지기 위한 색체로 채워져 있다.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무형태, 즉, 묘사적이기 보다 상징적으로 점차 바뀌었다. 선을 추가하고 삭제하는 과정에서 물 표면에 반짝이는 반사 면들을 조절하며 자연의 정신적 구조에 더욱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양순열은 그의 초기 작품에서 자연을 신중히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식물, 나무, 하늘, 그리고 지구를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스타일은 미국과 유럽의 아티스트들에게서 항상 나타난 것이다. 특히 독일에서 땅에 대한 애착은 알브렉 뒤러에서 안셀름 키퍼까지 지속적이고 자명하게 그들의 작품세계를 통해 나타났다. 양순열은 식물이 자라는 과정의 순간들을 점과 선을 통해 우아한 미(美)를 표현했다. 그의 테크닉은 매우 노련한데 이것은 피엣 몬드리안의 초기시절 그리고 빈센트 반 고호의 좀 더 자유로운 스타일까지, 네덜란드 화가들을 연상시킨다. 그 당시의 시대 정신을 기초로 볼 때 양순열 작품의 정신세계는 빛을 발한다.
양순열처럼 스페인 화가 피카소도 그의 작가인생에서 다채로운 스타일의 변화를 보였다. 그와 동시대 인물들인 브라크와 주안 그리스처럼 그도 입체파를 통해 오브젝트들을 다양한 시점에서 표현하며 형상의 외곽선을 그리는 것(contour)으로 캔버스를 채웠다.
양순열 작품에서 콜라주가 발견되는데 그것은 분석적인 입체파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스페인 화가 조지 브라크, 주안 그리스, 독일 화가 커트 슈비터즈, 그리고 러시아 작가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그와 같은 형식을 사용했다.
양순열의 작품은 분명 아시아 계에 뿌리를 두었지만 그의 작품이 발전된 양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감대를 갖고, 이것은 이와 같은 화풍을 갖은 수많은 동류의 아티스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양순열의 작품을 보며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화가는 카탈로니아 출신 스페인 작가 조안 미로다. 미로의 작품을 보면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이미지들이 있다. 미로를 천재라 부르는 이유는 그가 형태와 의미를 구분하여 표현하기 때문이다. 캔버스에는 전체를 아우르는 배경이 있고 그가 사용하는 선은 그 배경을 가로 지르며 흐른다. 형상은 색체로 채워져 표현되었고 다른 작품 속 요소들 사이사이에서 돌출되었다가 후퇴되었다가 한다. 결국은 작품의 감상자는 미로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들로 표현한 요소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합하여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상형문자적인 손 글씨는 추상표현주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초기 아돌프 고틀립과 초기 로스코의 작품이 그랬다. 양순열의 후기 작품들이 이와 같은 작가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다양한 크기의 원형 형태들을 사용하고 있고 불규칙적으로 날카로운 모서리로 된 형태들을 섬세한 색체의 추상적인 배경위에 흩뿌리며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작품 속 심리학적인 측면을 중요시했는데 그것은 아티스트들의 생각이나 관람자의 상상을 수반하기 위함이었다.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연결성이 없는 생각들을 한 작품에 두고 관람자로 하여금 그 이미지들에 대해 그들의 해석을 하도록 한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오브젝트들은 관람자의 상상을 자극한다. 이와 같은 기법의 대가로는 벨기에 아티스트인 르네 마그리트, 카탈로니아 출신인 조안 미로, 그리고 스페인 아티스트 살바도르 달리가 있다. 양순열의 작품 중 특히 <꿈과 사랑> 시리즈에서 이와 같은 측면이 발견되는데 이것이 그가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이다.
러시아 작가 바실리 칸딘스키는 자연에서 작품에 사용할 오브젝트의 형태를 발견하고 그것을 점차 추상화하여 원형은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이와 같이 작품 속에서 사물의 원래의 본질을 삭제하는 것은, 역으로, 내적인 파워로 가득히 채우고 정신적 세계로 가득히 채워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순열은 이러한 면에서 대가이다. 그의 클림트와 유사한 형태들을 처음 볼 때에는 쉽게 인식될 수 있는 인간의 얼굴과 특정 시대의 옷차림들이다. 형태적 측면에서 모든 인물들이 여성인 것으로 보여지나, 그 형태들이 추상화 될수록, 작품 속 바닥 형상의 끝자락과 연결되며 인물 형상들은 신비로운 요소가 된다. 이러한 착시현상과 함께 인물의 머리 부분은 점차 물음표와 같은 형태로 변형되고 있다.
양순열의 추상적 표현은 끝나지 않았다. 그의 작품이 발전할수록 그는 더욱 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가 배경색 위에 광택이 있는 컬러로 투명 배경을 만들 때 –색이 항상 스며들 듯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깊이가 있는 배경을 만들었다. 때때로 그 배경은 브론트의 <제인 에어>에서 등장하는 안개 속의 습지를 연상하게 하고, 그의 캔버스는 안개 속에서의 신비로운 인물 혹은 사물과 같은 느낌을 준다. 예를 들면, 물음표 형태의 머리를 가진 키가 큰 사람이나 동시에 도처에 존재하는 새와 같은 것들이다.
한 사전에서 “신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어떤 사건이나 사물이 매우 불명확하여 호기심이나 관찰을 유발시키는 것.”
이것이 순수미술 작품에 관람자로 하여금 꾸준히 관심을 갖도록 매혹하는 측면이다. 한 아티스트가 기술적으로는 훌륭하더라도 관람자의 관심을 끌 수 없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그 작품이 지나치게 관람자에게 설명을 하고 있을 때 그렇다. 양순열의 경우, 그의 기술은 숙련되었지만 동시에 관람자의 관심을 충분한 시간 동안 끌 수 있어 “누가”, “무엇을”, “왜”라는 질문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나아가 더 깊은 추상으로, 즉, 신비함을 더해간다. 이에 더하여, 그가 미술의 정통성에도 충실하여 타고난 색체 감각과 함께 균형 잡힌 형태를 표현하기 때문에 관람자는 차별화 된 감상의 기회를 갖게 된다.
Jan Hinmanne & Charlres Hinmann (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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