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한 그 위대한 순간 이후로, 인간은 인간의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을 초월한 신은 존재하는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양순열을 평생 동안 쫓아다닌 큰 화두이다. 그리고 그는 일상의 어느 순간에서도 그 질문을 놓쳐버린 적이 없었던 작가임을 40여년에 걸친 그의 방대한 작업이 보여준다. 심지어 1990년대 전반기에 이 작가가 그린 꽃, 나무, 자연풍경에서 조차 이 작가의 마음속에 무엇인가 매우 원대한 질문들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감지하게 한다. 붓질에는 자신이 있었던 양순열은 그의 눈에 닿는 자연의 모습들을 소중히 그려냈다. 이 시기 양순열이 그린 그림들을 살펴보면 식물의 줄기는 무성하기 짝이 없고 다소곳해야 할 꽃잎의 모양새는 방사선으로 뻗어 나간다는 느낌을 준다. 옥수수를 그린 그림에서 옥수수 줄기는 화면 바닥에서 끝까지 뻗어 올라 화면을 뚫고 나갈 듯 힘찬 기세를 보여준다. 2003-4년 연간에 그린 <화심(花心)> 시리즈에서는 몰골법을 사용해서 대상물의 모습을 생략하거나 과장하는 기법을 사용했는데, 이 그림들에서 작가는 꽃을 구성하고 있는 꽃대 한 줄기, 흐드러진 꽃잎 한 잎 한 잎에 마치 우주적 질서를 다 담으려는 듯 결연했음을 보여준다. 같은 시기 종이 위에 잉크와 펜을 사용해 그린 드로잉들은 선묘와 흩뿌리기 기법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식물의 형상성을 훨씬 뛰어 넘는 표현력을 구사했다. 자연의 대상물을 재현할 때조차, 작가의 의식은 보다 더 근원적인 차원, 보다 더 광활한 우주적인 차원을 그리려고 한 것이다.
1998년 양순열은 운주사를 답사하고 그곳에서 부처의 형상을 그린다. 처음에는 부처의 형상을 단독으로 그렸지만 어느 순간 부처의 형상은 하나가 아닌 두 개의 덩어리로 분리되는 듯이 그려진다. 부처에서 인간이 분리되는, 혹은 인간에서 부처가 탄생하는 무의식의 발로였던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아무튼 반복되는 부처의 그림들 속에서 양순열은 “호모사피엔스”라는 그의 필생의 주제를 도출해 내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이 수많은 그림들을 통해 시도됐다. 다분히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그린 2007년의 <경배>, <욕망>, <깨달음>은 전기 “호모사피엔스” 시리즈의 종결판 같은 작품들이다. 세로길이만 2M가 넘고 가로 길이가 4M, 5M가 넘는 대형 캔버스에 양순열은 인간의 욕망과 그와는 상반되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경배감, 존재론적 깨달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우선 <욕망>이란 작품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회색빛 톤의 화면에 번데기 같은 덩어리 형상 3개가 그려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 욕망의 형상화를 통해 작가는 욕망에 기인한 불안과 위태로움, 파국 등에 대한 상징적 언급을 시도했다. 반대 지점에<경배>와 <깨달음>이 놓여 있다. 양순열은 <경배>라는 작품에서 두 사람의 인물을 화면의 오른쪽과 왼쪽에 그려 넣었다. 인간의 형상은 자세히 묘사되기 보다는 인체형상임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거칠게 그려졌는데 이런 표현방식은 오히려 <경배>하는 인물들의 경건한 마음가짐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양순열은 어떤 미동에도 흔들림 없는 강건한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다. 대지에 굳건히 발을 딛고 고개 숙여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깨달음>이라는 작품은 <욕망>과는 전혀 다른 인간과 자연 혹은 초월적 존재를 향한 신성한 마음의 은유를 보여준다. 마치 모아이 석상처럼 머리와 몸통으로만 구성된 원형적 형태의 인간이 화면을 가득 채운 이 그림에서 무엇인가에 대한 경배의식을 수행하는 인간 군상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득히 먼 고대의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 수행되었을 거룩한 의식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깨달음>이라는 작품은 2006년에 그려진 작가의 작은 드로잉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지닌다. 이 작은 드로잉에서 작가는 붉은 태양을 화면 오른쪽 위에 배치하고 그 아래에 여러 개의 선돌을 그려 넣고 붉은 물감으로 채색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의 서명이다. <二ㅇㅇ六 太陽人 順烈>이란 또렷한 서명에서 우리는 작가 양순열이 어떤 각오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개척해 나갈 것인가를 예상할 수 있다. 운주사 부처의 드로잉으로부터 시작된 인간, 호모사피엔스에 대한 관심이 화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일체화 되어 나갈 것임을 선언하는 서명이다. 작가와의 대화중에 이 시기 호모사피엔스 형상들이 지닌 특징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형상들이 서 있는 형태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이 형상들은 양순열의 그림 안에서 마치 안테나 같은 기능을 한다. 작가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며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 인간과 신, 인간의 꿈과 사랑 등에 주파수를 맞추며 호모사피엔스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 온 것이다.
양순열이 2009년에 그린 <꿈과 사랑 어머니꽃(Dream & Love Motherly Flower)>이라는 작품 역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80x180cm, 족자 그림의 형식을 빌린 화면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수묵기법을 사용했는데 화면의 오른쪽과 왼쪽에는 거칠고 진한 먹물의 번짐이 자리 잡았다. 화면의 중앙에는 뭔가 솟구치는 밝은 공간이 등장하는데 그 사이로 꽃의 형상과 하트의 형상이 오버래핑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양순열의 나이 오십, 지천명의 세수에 이르러 작가는 작품의 제목처럼 어머니꽃을 그렸다. 그런데 화면의 중앙과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치우친 부분에 등장하는 배부른 여성의 형상. 생명을 배태한 어머니의 표상이 금색 물감으로 슬며시 그려져 있다. 이 여성을 금색으로 채색함으로써 양순열은 영원히 변치 않는 모성애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호모사피엔스에 대한 집요한 탐색이 모성애라는 주제로 확장되고 있음을 이 작품이 보여준다.
호모사피엔스와 모성애라는 주제가 양순열의 예술세계에 등장한 이후로 이 작가의 작업 역량은 훨씬 더 폭발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Dream & Love>시리즈,
<클라라 슈만(Clala Shumann)>같은 초상 시리즈, 2009년 이후에 등장한 <아버지의 의자>, <백미러>, <땅콩>, <워커의 조국>같은 오브제 작업들을 거치면서 양순열은 그의 모든 감각, 모든 감수성, 모든 환상과 상상까지를 다루는 창작의 열병을 견뎌냈다. 양식적으로는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양식을 드러낼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이 단계에서 등장한 것이 양순열의 가장 대표적 예술작품으로 평가되는 오똑이 조각과 오똑이 형상이 후기 호모사피엔스의 회화적 비전으로 완성되는 <현현> 시리즈 이다.
오똑이 조각은 2011년부터 제작됐다. 처음에는 양순열의 그림에 소품처럼 나타나는 소재였던 오똑이는 손안에 들어갈 만큼 작은 크기로, 작은 아이만한 크기로, 등신대의 크기로, 혹은 3-4M의 큰 키를 가진 조각으로 만들어져 세계 곳곳에서 전시되었다. 긴 치마를 입은 어머니 형상의 오똑이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모성애로서 자식과 세상을 감싸 않는 어머니의 사랑처럼 양순열의 오똑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다. 작가노트에서 양순열은 자신의 오똑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 오똑이 Ottogi
네 마음의 汝 너의 오똑이
내 마음의 我 나의 오똑이
미술가의 상상세계로 오뚝이 형상을 어머니 형상으로 모성을
투영해 보았다. 모성은 늘 사랑과 믿음, 비움과 숙임의 본질로
가능하다. 모성은 우주와 한 마음이 되고 인간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나아갈 때 가능하다. 우리 삶이
우상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긍정적인 부적 같은 에너지덩어리
자체이다,”
양순열은 이제 인간의 갖가지 욕망과 그에서 빚어지는 인류세의 종말을 순수한 모성으로 극복하자고 이야기하는 예술가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메시지는 그의 페르소나, 어머니 오똑이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에서, 인간성이 메말라버린 마천루의 대도시에서, 인간과 동물이 모두 굶주림에 시달리는 황무지에서 양순열의 어머니 오뚝이는 생명의 소중함과 인류의 구원과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게 해 주는 존재이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연결되어 있다는 신념, 그 신념의 중심에 어머니 오똑이를 굳건하게 세워 모성의 힘을 다시 일깨우는 예술가, 양순열이 있다.
Comments